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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일기

우남55 2018. 1. 20. 15:47

어머니의 일기

 201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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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올해 여든아홉이 되셨다.

오래 전부터 어머니는 일상의 잔잔한 감상을 글로 남기시고 있다.

이젠 허리도 휘시고 근력도 많이 떨어져 출입이 마냥 자유스럽지는 않지만

혜재의 윗채와 아래 초가뜰을 오르내리시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옛날, 소학교만 다니셨다는 어머니는

맑은 정신에 지금도 쭈욱 일기를 쓰신다.

 

여기에 어머니의 일기 한 편을 소개한다.

 

지금부터 17년전인 1994년도 가을에 지나간 그해 여름을 돌아보며 쓰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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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1994년도 이다)

 

여름(에) 있었던 일(아마, 일기의 제목인 듯)

 

더위 기상관 기상측이래

최고기온을 경신하면서 얼마나 더웠던 여름

생각하면 자연의 오묘한 섭리 앞에 고개가 숙어진다.

연일 불볕더위 속의 종일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짜징나던 그럿케 지독한 여름이었는데

 

아지(강아지)가 색기 육바리(새끼 여섯마리)를 나았다.

옛부터 개는 집을 지키는 일 인간을 도왔다.

개는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주인에게 던비지(덤비지)않는것 그때문에 오륜의 동물로 취급받고

옛부터 대부가에서 많이 키우고 있다.

강아지가 태어난지 십오일째 되던 날

서울 유학갔던 손자 남매가 여름 방학이 되어 강릉 본가에 하강(강릉으로 내려옴)하고 강아지 이름을 지었다.

첫째 문섭이, 일섭이, 백섭이, 검섭이, 점섭이 두마리

이렇게 육마리가 쫄쫄 따라다니는 강아지가 귀찮다고 발길로 내 쫒기도 했었다.

 

생각하니 금년은 행복한 일이 많은 것도 같다.

 

10월 8일 한우 암송아지 두바리를 구입했고

뿌린대로 거둔다는 이치대로 앞밭에 멋스럽게 심은 호박이 조롱조롱 호박이 열고

담장 우에 박 꽃은 달빛을 담북 받아 더욱 하얀 박꽃을 보며

휘영청 밝은 7월 15일 백중달 아래 마당가에 모기불을 놓고

평상 위에 왕골 돗자리를 펴고

몸침기(목침)를 높게 베고 누워 북두칠성 밝은 별과 은하수를 살펴보고 있을 때

저쪽 밭내리(밭가)에서 반딧불이 반짝거린다.

마치 별이 쭉 원을 그리며 흐르는 것 같은 그런 반딧불

그때 무엇이라고 흑현(표현?)할까요   

 

여름은 쾌활한 계절입니다.

 

오늘 저녁은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웠더니 반딧불은 반짝거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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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도 여름은 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

무척이나 무덥고 길었던... 아마 몇 십년만의 혹서였다는 기상관의 발표가 있었을 것이다.

서울의 광화문 앞 대로변의 가로수 은행나무가 생명의 마감을 예감했는지 엄청 달렸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머니도 그해 여름 나시기가 매우 힘드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을이 되어 더위가 꺽이니 자연의 오묘한 섭리에 경의를 표하신다.

 

그 더위 속에서 강아지가 새끼를 여섯마리나 낳았나 보다.

조카가 방학에 내려와 새끼들을 보고 털 색깔에 따라 재미있게도 이름을 지었다.

 

어머니는 자연이 주는 소박함과 풍성함에 행복해 하신다.   

 

사위는 시원하고 칠흑같이 적막한 밤에

평상에도 눕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우셔서

밤하늘의 별과 밭가에서 날아다니는 소똥벌레의 춤을 감상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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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돌아가고 싶은 아득한 정경인데 이젠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혜재의 앞 뚝 길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해 준 가로등이 있어(밤에는 임의로 끌 수도 없게 해 놓았다.) 

시골 정취가 잘 살아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밤 하늘의 별 보기가 어려워졌다.

 

한여름, 모깃불을 피우고, 멍석을 깔고, 마당에 눕는 정서도 없어졌다.

 

물론, 반딧불이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극히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특화 상품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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